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내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것 같고 내가 가치로운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업신여겨지는 것, 깔보이는 것, 누군가가 나를 얕잡아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존재 자체를 흔들기도 하고 모멸감과 불쾌함을 줍니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어서 누구도 깔보지 않을 위치에 이르거나 능력을 기르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이상향과 목표
내 목표가 단순히 “대단한 사람”, “위대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에 놓이게 되면 그 여정에서 길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인 “성공”이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 ‘성취’에 대한 어떤 “정답”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은 것이라고 반응하는 것들입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대 등의 일류 대학 입학.
삼성, 구글 등의 대기업 취업.
의사, 변호사, 판사, 교수 등의 전문직.
돈을 많이 벌게 되는 것.
연예인, 가수 등의 성공.
유명해지는 것.
이러한 것들이 성취의 척도처럼 이야기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마음의 노래를 듣기
그러나 과나 전공의 선택도, 직업의 선택도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성공한 삶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하루 하루, 일분 일초의 나의 삶의 질에 관계합니다.
각자의 영혼이 더 기쁨을 느끼고, 가슴뛰고, 바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직업으로 가지든 가지지 않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노래하는 것을 행하고 접할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뿌리깊은 안정감은 그 자체로 삶의 의미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삶은 누군가 “와” 하는 감탄사를 자신을 향해 내뱉은 그 짧은 순간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루하루 경험하고 체험하고 겪고 느끼는 날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내 자신이 두근두근하고 마음이 노래하고, 에너지가 차는 것들로 채우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뿌리를 내리는 삶
밖에서의 찬사가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고 귀 기울이고, 알아차려가며 아 나는 이런 것을 할때 살아있음을 실감하는구나 이런 것들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구나 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저 똑같은 과목을 배우고, 성적으로 줄세우기를 해서 대학 입학을 정하고, 그후 명성이나 벌이에 따라 취업 경로를 정하는 경향성이 있는 사회에서 이는 조금은 어려운 일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각자가 자신의 꽃을 피우게 되는 순간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말해지는 대학 간판이나 명성만큼이나 과 선택도 중요합니다. 과의 명성이나 인기가 아니라 과 안에서 어떤 것을 다루는지, 내가 그것을 하는 것이 내 삶을 채워주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학 4년은 단순히 인생의 거쳐 지나가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내 삶의 의미를 주는 중요한 경험을 하는 순간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스스로를 더 알아가며 만나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이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삶 안에는 너무도 다양한 측면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사람, 굉장한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뛰고 내 마음이 노래하는 것을 행하며 그를 통해 세상에 이바지하는 창구를 찾아가게 되면, 이는 단순히 밖에서 “와”하는 명성을 좇다 길을 잃는 삶이 아닌 뿌리를 내리는 삶으로 다가가게 됩니다.